This is an article from the September-October 2011 issue Making Disciples.
September 01, 2011 by Floyd McClung
(원문보기:http://www.missionfrontiers.org/issue/article/disciple-making-church-planting)
저자소개
Floyd McClung is founder and leader of All Nations, a movement of simple churches and church planters working together across the globe to catalyze disciple-making, church planting movements among the unreached and unchurched. All Nations offers church planting equipping programs called CPx in Kansas City and Cape Town.
국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 제자화 사역과 교회개척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의 성가신 종교 기관과 부적절한 예배 관습을 회피하시고, 뭔가 살아있고 유기적인 것을 시작하셨다. “유기적(organic)”이라는 단어는 자발적으로 재생산하는 온전한 교회 운동을 묘사하기에 좋은 단어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위적인 첨가물 없이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뭔가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장과 배가를 가능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관계 안에서 공존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이 온전한 교회 운동이 성장하는 방법으로 상명하달의 위계적인 조직이 아니라, 같은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운동이다. 나는 회중교회 모델 속에서 성공적인 교회가 온전한 교회 개척 운동에 실제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관찰해왔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제자들에게 지도력의 은사를 훈련시키셨던 방법을 주목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리더십으로 합류하기 전에, 세례 받고, 신학적으로 훈련되고, 안전한 종교 체계 아래서 보증된 통제수단으로 관리된 제자들을 기다리신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보낸 몇 주의 범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게 하셨다(마10:1-14). 예수님께서는 아주 빠르게 제자들을 리더십에 포함시키시면서, 견해나 표제에 대한 아무 언급도 없이 밑 바닥부터 시작하신 운동을 이끄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와 심지어 오늘 날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셨다. 제자들이 실제로 중생하기 전에 그들이 복음주의적 이해가 의미하는 것에 이르도록 훈련하셨다. 결국, 제자도의 여정은 사람이 믿음에 이르렀을 때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하는 것이다.
모임이 아닌 운동
닐 콜(Neil Cole)은 그의 책 ‘유기적 교회(Organic Church)’에서 안정적인 교회 개척 모델에서 역동적이고 빠르게 확장되는 800개 이상의 보통 교회들의 유기적 운동으로 변화하는 캐리의 여정을 그렸다. 콜은 성장하는 교회의 비밀을 깨끗한 화장실과 넓은 주차 공간으로 생각하는 “교회 성장”세미나와 함께 캐리의 각성의 과정을 그렸다. 콜의 비평은 다음과 같다.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는 더러운 화장실과 비좁은 주차 공간 때문에 방해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정결케 하기를 기다리셔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같이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는 곳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결핍요소는 깨끗한 화장실과 주차공간이다.” 3
콜은 하나님께서 캐리가 어떤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깨달음을 묘사한다. 그 운동은 교회가 되기 위해 과감하게 문턱을 낮추는 것이며, 교회 안에서 제자가 되기 위한 문턱은 높이는 것이다. 자신있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제자를 만듦으로써 교회 배가 협의회(CMA: Church Multiplication Associates) 운동이 불과 몇 년 만에 세계 25개 국가와 미국의 30개 주 보다 더 많은 800개 이상의 교회로 성장했다.
어떻게 이런 운동이 가능했을까? 거기엔 확실히 하나님의 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순전한 교회 운동은 개인의 제자도에 의한 성장으로 박차를 가한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제자 삼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사람을 제자로 만들지 못한다. 건물은 사람을 제자로 만들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을 제자로 만든다. 그리고 제자가 된 사람이 국가를 변화시킨다.
카페타운(Cape Town)에서 교회 개척의 노력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초대를 모든 사람에게 강조하고, 진지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명령을 가르친다. 우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 장벽을 낮췄기에 모든 사람이 교회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가 제자가 되기 위해 기준을 높였기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과 한 사람이 변화된 인생을 산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앗이 뿌려진 네 종류의 토양 중 오직 한 종류만 깊이 심겨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찾는 제자를 삼는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변화 시키는 것이고, 미래의 지도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우리가 양육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더 예수님을 알고자 갈망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보가 아닌 양육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몇 몇은 나에게 중요한 투자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믿어주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을 내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제자도의 목표는 정보를 퍼트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 대 인격’으로서의 양육이다. 나는 수많은 좋은 설교와 훌륭한 책을 접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지도자와 관계를 가져왔다. 그러나 진정 내 인생을 변화 시킨 것들은 나를 알고자 하는 시간을 갖고, 내게 조언을 해 준 사람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두 손으로 꼽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 각각에게 독특한 무언가를 주셨고, 그들은 그 특별한 것을 나에게 흘려 보냈다. 지금 나의 나 된 것은 그 사람들 덕분이다.
고든 피(Gordon Fee)는 뱅가드 대학(Vanguard University)을 다닐 때 나를 가르친 교수님 중 한 분이시다. 그는 멘토가 되어 주셨고, 한 사람의 교수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친구가 되어 주셔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나와 다른 학생들을 방문하시기 위해 기숙사의 내 방까지 와 주셨다. 우리가 다음 경기를 위해 연습할 때, 체육관에 들러 함께 연습해 주셨다. 나를 사무실로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내가 잘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실 때엔 내 마음을 꼬치꼬치 캐물으셨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나눴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제자 삼는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하셨던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몇몇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혼신의 힘을 쏟아 부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대중에게 설교하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제자들과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또 다른 사람들을 재생산하게 하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딤후2:2). 제자 삼는 문화를 만들고, 제자 삼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열정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길에 잘 옮겨 붙고, 후에는 그 불길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교회와 운동은 오늘날에도 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몇몇은 관계적으로 제자를 삼는 비전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의도적으로 전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안에서 우리의 삶이 재현되도록 기대할 수 있으며, 어떻게 전체 도시들과 나라가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삶에 있는 좋은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그것은 이 천년 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시작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수되었다. 만일 당신이 소망과 열정, 목적과 운명에 대한 감각을 가졌다면, 이는 당신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그것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에 감동을 주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의 목적에 대한 열정은 전해 받아 양육되고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된다. 이것이 교회 속에 열정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방법이다.
열정과 목적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것을 갖기 위해 지불한 대가만큼 치러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아버지의 복을 받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면, 우리도 그만큼 해야 하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증명된 열정을 가진 무리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복음과 국가의 변화를 위해 안락한 곳을 떠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위험한 곳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자원하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최초의 제자들이 거둔 것과 같은 열매를 경험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끄시는 주된 방법은 사람들의 삶 속에 개인적인 투자를 하신 것이다. 주일 중심의 교회 모델은 세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몇몇은 교회가 오순절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신약교회를 이끄셨다. 그분께서는 적은 수의 남녀를 모아 그들의 삶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교회를 이끌어가는 방법의 새로운 모형을 만드셨다. 예수님께서는 충성된 남녀를 모으시고, 준비시키셔서, 헌신된 사람들의 운동으로 힘을 모으셨다(마28:19-20, 딤후2:2). 이런 종류의 의도된 일대일 관계가 사람들을 상함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예수님을 섬기도록 하는 비결이다. 제자도는 학교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개인적인 투자와 개입을 통해 전수되는 열정과 목적의 생활방식이다(살전2:18-19; 3:10).
몇 년전, 찰스라는 청년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꿈이 있는지 물었고, 찰스는 꿈에 대해 열정적으로 나눴다. “저는 팔 대에 걸쳐 제자를 갖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시작된 20년 전까지 거슬러 사람들을 추적해보니 저는 8세대의 제자였습니다.” 찰스는 가슴으로 알던 관계의 긴 고리에 속한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였고, 그 고리를 강력하게 했던 원리들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찰스는 “저는 언젠가 교회 개척 운동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투자하지 않으면 저는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찰스는 옳았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교회를 하는 데에는 어떤 지름길도 없다. 팀을 만들고, 공동체가 되고, 배가되어, 운동으로까지 커가는 것이다. 2~3세대의 제자들과 함께 제자를 삼는 교회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찰스는 이미 한 교회 이상, 4세대 이상의 제자들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교회 개척 운동을 일으키길 원했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한 번에 한 명씩에게 투자함으로 이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꿈이 이루어 지는데 있어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가 물었을 때, 찰스는 접촉하려고 하는 룸메이트들과 그가 매주 만나 큐티와 믿음을 나누는 새롭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간결하고 실제적인 단계를 지나고 있었다. 그는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제자를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순종하는 제자들은 제자를 만든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이다.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교회 안에 리더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없다. 리더들이 다른 리더들을 위해 삶을 투자하면 그것이 최고의 제자도이다. 왜 그럴까? 사도적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만 더 많은 리더들을 발굴하고 파송하는 리더십 문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다른 리더들을 발굴하면, 한 인생의 영향력이 많이 배가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더 많은 열매를 생산한다.
제자를 만드는 것은 천성에 있어서는 개인적이지만 영역 안에서는 변형적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퍼뜨리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개인적 제자도가 우리를 하나님의 세계적 목적과 연결한다.
제자를 만드는 것은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란다 코프(Landa Cope)를 인용하자면 “복음이 도달한 공동체라도 제자화된 공동체는 아니다.” 개인의 삶에 영적 변화를 가져오는데 있어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제자도 과정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개인을 변화시킨 사람들이 사업, 가족, 학교를 변화 시킨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킨다. 란다가 말한 것처럼 수천 수 백만의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제자화 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가 사는 아프리카는 몇 번이고 복음이 전해졌다. 그러나 제자화되지는 않았다. 아프리카는 새로운 종류의 기독교인과 교회를 꾸려갈 새로운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그룹에서 사람들을 제자화 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간다. 예수님께서는 몇 명의 남녀를 모아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심으로써, 교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드셨다. 이런 의미에서 빌 하이벨스(Bill Hybels)가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다라고 말한 것은 옳다. “교회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를 시대에 맞게 변형시키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대리자이다...지역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다.”라고 하이벨스는 선포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대로 메시지를 맡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이 반드시 구별 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일을 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고, 흠 없이 돈을 다루고, 가난한 자에게 다가가는 지에 대한 것이다. 개인의 구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모본을 따른다면,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 그 목표가 된다. 제자도는 개인과 그를 둘러싼 공동체 모두를 변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다. 슬프게도 많은 리더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결정을 하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들고 있지 못하다.
제자도의 그물을 만드는 것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로 하여금 제자가 되게 하셨을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다. 후에,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던져지는 그물이 되는 것으로 묘사하셨다(마13:47). 예수님께서는 각 개인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가져오기를 원하시는 것을 잡기 위해 그물을 만든다면, 그것은 제자도의 그물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물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변화된 사람들을 얻고, 모으고, 배가하는 것에 관해 의도적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또 다른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큰 추수를 가져올 사람들을 아주 신중하게 고르시고 준비시키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영향권 안에서 동일한 것을 하도록 위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라는 시설을 세우시려고 오시지 않았고,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
효과적인 제자도의 그물을 만드는 것은 제자를 삼는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을 모아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제자를 만드는 것의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일터와 학교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가깝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소그룹이나 일대일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영향권 안에서 몇 사람을 선택하여 성실하게 제자화하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화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추수를 거둬들일 그물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비전을 나누고 사람들이 반응하도록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들의 인생을 향한 큰 계획 속에 들어 가도록 하심으로써 훈련 과정을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실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것이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인생을 향한 큰 꿈을 꾸도록 격려하셨고,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도록 부르시는 용기 있는 남녀를 알아보도록 도우셨다. 예수님께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인생에 투자하셨고, 후에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기를 요청하셨다.
누군가를 제자화한다는 의미는 의도적으로 그 사람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내가 동일하게 갖는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을 함께 나누는 초대에 응했다면, 그들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를 끌어내고, 진실된 관심을 향상시킴으로써 그들을 알게 된다. 열심히 기도하며 그들에게 확신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인생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하라. 기도하라. 축복하라. 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당신에게 주시는 것을 말하라. 그러나 교회 용어를 쓰지는 말라. 당신의 격려와 믿음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yes’라고 말할 용기를 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위대한 가치를 깨닫게 하라.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 1:6)라고 편지를 쓴 것은 바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맡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제자화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그것을 할 것이다. 우리는 다원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거기엔 사람들의 열정을 위한 계속되는 전투가 있다. 모든 예수님의 제자는 선봉에 있으며, 자주 혼자가 된다. 그런 환경에 사는 것은 분명한 성경적 사고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르침과 훈련을 의미한다. 암기된 대답들로만은 부족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것으로도 대적들이 던지는 도전들에 직면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들에게 천국의 가치를 가르치는 굉장한 책임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최전선의 일꾼들을 준비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우리를 배치시키셨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그들이 “전적 헌신”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제자도의 대가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제자가 되기 원하는 누군가를 위한 블랑켓게런티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대가는 크다. 그러나 우리가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의 보답을 물려받을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일터에서, 대학의 기숙사에서, 이웃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예수님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여 사는 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아에 대해 죽는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예수님의 소유로 바꾸는 것이고,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강퍅함을 직면하는 것이며(고후10:4-6), 주간 기지에서 두 세 사람이 함께 진리와 책임 삶을 사는 것이고, 정직함으로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것과 책임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할 남녀들의 아버지, 어머니 되기 운동에 우리를 부르시는 중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는 것과 순종하는 일에 성실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종류의 제자들을 배출하는 교회와 운동들이 있으며, 다른 한편은 이에 접근하지 않는다. 교회와 운동들이 이런 제자를 배출하는 이유는 그곳의 리더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그들의 삶을 내려놓는 비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만일 인도하는 사람이 이런 열정과 비전을 가졌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수될 것이다. 우리가 제자 삼는 일을 우선 사항으로 두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비전은 환상일 뿐이다. 그것이 꿈꾸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일을 정말 잘하려면, 우리의 우선되는 관심이 제자 낳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제자 삼는 것이 제자도 문화를 만든다.
개인적 제자도가 교회와 운동을 위한 삶의 방법이 될 때, 그들이 지지하는 것이 전수될 것은 확실하다. 제자도는 문화를 낳게 한다. 한 사람으로만은 할 수 없다. 혼자서는 충분히 영향을 미칠만한 입장에 있기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제자 삼는 운동을 시작하고 키워가는데 있어 우리를 부르심으로써, 엄청난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갖는 과정을 고안하신 것이다. 이것이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동일한 열정과 꿈을 가지도록 영향을 미치는 운동으로 자라가는 방법이다.
제자도는 다름이다.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과 전략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기독교 단체와 지역교회에 의해 계발되어왔다. 이 모든 프로그램과 전략들이 훌륭하다. 그러나 프로그램과 전략이 제자를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생각이 제자를 만들지 않는다. 제자가 제자를 만든다. 또 다른 자신을 복제해내며, 동시에 국가를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가진 교회와 운동에는 지름길도, 다른 길도 없다.
당신이 제자를 만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심어 두신 비전과 가치를 재생산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심어 두신 영적 DNA를 전수하는데 다른 방법은 없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 많은 방법이 있으며, 더 많은 관심을 얻는 사역에 대해서도 여러 접근법들이 있다. 그러나 당신이 리더십 문화를 세우기 원한다면, 교회와 운동에 대한 사도적 열정을 나눠주기 원한다면, 바라던 대로 복음이 민족과 나라들을 변화 시키는 결과를 보고 싶다면, 그것은 당신이 제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일어나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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