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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가족사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Oil painting by Caspar David Friedrich (1818) >창세기 13:1–18 보이는 것과 약속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주셨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언약에 걸맞은 선택으로만 채워지지는 않았다. 기근이 들자 그는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고, 언약 자손을 잉태해야 할 사라는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는 위기에 놓였다. 위기 앞에서 아브람은 믿음보다 생존을 택했고, 그 선택은 언약의 성취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선택 이후에도 아브람을 버리지 않으셨고, 그 공동체에 은혜를 베푸셔서 아브람과 조카 롯 모두 큰 부를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바로 이 풍요가 또 다른 시험..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철저히 피조물이며, 피조세계를 향해서는 대표자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께 위임받은 청지기로서 피조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책임을 갖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존재로서 인간의 자기 인식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름을 지으시고 먹거리와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섭리적 돌봄을 모방하여, 세상을 보존하고 돌보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여기에 인간 본래의 소명이 자리한다. 인간은 성과를 통해 자기 가치를 증명하고 인정받는 존재로 지음받지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재 자체로 부름을 받을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맡기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미 인정받았다. 하나님의 공급을 받고 그의 명령을 듣는 자로서 인간은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았다. 동산의 온..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1:26)고 말씀하신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단순히 신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는 노예와 같은 부수적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피조 세계에서 어미와 새끼가 전혀 다른 종이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관계적 유사성이라는 공유적 속성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신성과의 혼합이 아니며, 인격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부름받은 책임을 부여받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윤리적 소명이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피조물에게 허락된 특별한 부르심이 얼마나 과분한 은혜인지 생각해보면, 인간 존재가 지닌 존귀함은 더욱 돋보인다. 고대 세계에서 신(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오직 왕에..
창조의 질서 안에서 다시 배우는 경외의 삶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삶과 분리된 추상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도록 설계된 삶의 토대이다. 피조세계는 인간을 위해 주어졌고, 인간의 삶은 창조 질서 위에서만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신 피조세계를 얼마나 쉽게 우상화 해왔는지 보여준다. 잘 사용하고 돌보라고 맡기신 것을, 어느새 신격화하여 섬기는 모순이 반복되어 왔다. 분명 해와 달, 자연과 시간은 인간의 능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들이 능력의 근원이거나 운명의 주체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기능을 수행하는 피조물일 뿐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숭배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하..
관찰 아닌 해석으로 창조를 증언한 사람 모세천지창조는 일어난 사실이지만, 누구에게도 목격된 일이 없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창조 사건의 과정 속에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창조의 현장에 서 있지 않았고, 목격자가 되어 과거를 기록한 관찰자도 아니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계시를 통해, 자신이 속한 역사와 언어, 세계관 속에서 창조를 해석한 증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창조에 관한 서술은 단순한 ‘과거 보고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세상은 어떤 분의 손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증언하는 신학적 고백이다.그 점에서 모세의 배경지식—고대 근동의 창조 이해, 특히 이집트 문명과 그 우상 체계—는 그의 서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에 관한 왜곡이라기보다, 하나님..
1장종교개혁으로 유명한 유다 왕 요시야 때, 하나님께서 스바냐를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분노는 노아의 홍수를 연상케 할 만큼 커서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신다. 특히, 사람의 씨를 말리시겠노라(3절), 힘주어 말씀하신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사람을 심판하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이 배교의 여러 형태를 통해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 신앙으로 부름받은 백성들 가운데 바알 신앙(신상, 그마림)이 자리하고, 하늘의 별을 섬기고, 여호와를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밀곰을 두고 맹세를 하고, 주님을 찾지 않고 아무것도 여쭙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것이 심판의 이유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대놓고 거역하지 않는다..
✨ 좁은 길에서 누리는 평화 ― 데살로니가후서 묵상데살로니가후서는 단 세 장으로 구성된 짧은 서신입니다. 전서에서 바울은 “조용히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며 품위를 지키고 신세지지 말라”(살전 4:11-12)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아 교회 안에 문제가 남아 있었고, 바울은 다시 펜을 든 것으로 보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자람에 대한 감사후서도 전서와 마찬가지로 풍성한 감사로 시작됩니다.바울은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고, 여러분 모두가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 간다”(살후 1:3)고 말합니다.박해와 환난 속에서 인내와 믿음으로 증명된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워진 표가 되었습니다(1:5).고난을 이겨낸 것이 하나님 나라의 표..
🌿 데살로니가 교회와 목포대 개척의 첫걸음2025년 9월, 매일성경 본문은 데살로니가서입니다. 바울이 선교사 초년병 시절,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뒤 쫓겨나듯 들어갔던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입니다.사도행전에 따르면 불과 3주간 머물렀다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4–6주 동안 복음을 전하며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난의 흔적을 안고 들어간 바울빌립보에서 옥에 갇히고 매를 맞았던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대, 얼마나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을까요?아마도 눈두덩이에는 멍이 가득하고, 입술은 터져 피가 흐르며, 몸은 걸음을 떼기조차 힘들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음을 붙잡고 데살로니가로 향했습니다.⸻💒 준비된 영혼의 환대그런 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