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rontiers/Sep-Oct 2011

국가를 변화시킨 선교사 윌리엄 캐리

dfcjoshua 2011. 10. 5. 15:03
This is an article from the September-October 2011 issue Making Disciples.
September 01, 2011 by Scott Allen 
(원문보기:
http://www.missionfrontiers.org/issue/article/william-carey)
 
저자소개
Scott Allen is president of the Disciple Nations Alliance International Secretariat. This article is from his recent book Beyond the Sacred-Secular Divide: A Call to a Wholistic Life and Ministry, published by YWAM Publishing.

 
 영국인 윌리엄 캐리(1761-1834)가 1793년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이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인도의 역사 속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캐리는 비 영어권인 캘커타 주변에 1800년 1월 10일 최초의 근대 개신교 선교회인 세람포(Serampore) 선교회를 세웠다.1 이를 토대로 캐리는 그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약 25년 동안 사역했다. 마침내 일군 그의 승리는 눈부셨다. 인도 사람들을 향한 다함 없는 사랑과 “악한 영적 세력”(엡6:12)에 대항한 집요한 투쟁을 통해, 인도는 말 그대로 변화되었다. 아시아 역사가 휴 틴커(Hugh Tinker)는 인도에 준 캐리의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리고 세람포에서 그랬던 것처럼, 후글리(Hooghly) 강둑에서 근대 남 아시아의 중요 요소인 신문, 대학, 사회의식이 나타났다.”2

 윌리엄 캐리는 누구인가? 그는 정확하게 주님께서 위대한 일들을 완수하시기 위해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중 대부분이 가장 기대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는 정규교육이 전혀 없는 영국 시골의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수입은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여 번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머리가 거의 빠져서 볼품없고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 인도에 도착하여,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영국인 식민지 개척자들에게도 매우 시달렸다. 또한 그의 파송 기관에서도 외면받았으며, 그를 돕도록 파송된 젊은 선교사들 때문에도 힘들었다.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마도 대영제국의 가장 큰 식민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3 

 캐리는 인도에 단순히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고, 가난한 자를 위한 진료소를 세우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나라를 제자 삼는다는 좀 더 포괄적인 비전에 의해 움직였다. “캐리는 인도를 개발하고 싶은 타국으로 보지 않고, 사랑과 섬김을 받을 하늘 아버지의 땅으로, 무지가 아닌 진리로 다스려 질 필요가 있는 한 사회로 보았다.”4 캐리는 그 땅을 취할 기회를 노리며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예수님이 인도의 주인이시라면 어땠을까? 무엇이 달라질까?” 이 질문이 캐리로 하여금 계획을 설정하게 하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매우 다양한 활동들에 그를 동참케 하였다. 다음은 비샬과 루스 망갈와디의 주목할만한 책 ‘윌리엄 캐리의 유산: 문화 변혁을 위한 모델’에 나타난 캐리의 사역의 하이라이트이다.5

 캐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나라 중 하나인 인도가 야수와 독사들에게 버려진 개간하지 않은 정글이 되도록 그냥 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결과, 그는 농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하였고, 농업 혁명 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린네식 체계를 도입하여 식물을 계통화하고, 인도의 첫 번째 과학교재를 발행했다. 그는 창조주가 자연은 좋은 것으로 선포했다고 생각하여 이런 일을 하였다. 창조는 힌두인들이 믿는 것처럼 기피해야 할 환상이 아니라 인류학적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캐리는 만연한 사회악인 고리대금에 맞서기 위해 저축 은행의 개념을 인도에 도입하였다. 그는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투자, 산업, 상업, 경제적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일을 싫어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으로 인도의 한센병 희생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를 위한 운동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사랑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베풀어지고, 그들이 간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단적 죽음은 몸을 정결케 하여 새롭고 건강한 존재로 환생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 전에는 한센병 환자들은 산채로 매장당하거나 태워졌다.

 그는 동양의 언어로 인쇄된 첫 번째 신문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진실과 믿음의 모든 형태를 넘어 기독교는 자유로운 논의를 추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영어 잡지인 ‘인도의 친구’는 19세기 전반기에 인도의 사회적 개혁 운동을 낳은 추진력이었다. 

 그는 성경을 40개 이상의 다른 인도 방언으로 번역했다. 그는 앞서 “오직 마귀와 여자들에게만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벵갈리어를 인도에서 가장 문학적인 언어로 변화시켰다. 그는 벵갈리어로 복음성가를 지어 음악을 사랑하는 힌두인들이 그의 주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오게 하였다.

 그는 인도의 아이들을 위해 12개의 학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첫 번째 대학을 시작하였다. 그는 인도인의 생각이 발전되고, 어둠과 미신으로부터 자유케 되기를 바랐다.

 그는 무자비한 살인자들과 만연한 여성억압에 대항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인도의 여성들은 모두 종교에 의해 승인되었던 일부다처제, 여아살해, 아동 결혼, 과부를 불태우는 일, 안락사, 강요된 문맹으로 짓이겨졌다. 캐리는 여성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과부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그는 결혼을 주선했다. 이것이 사티라고 불리는 과부를 태우는 악습에 대항한 불굴의 25년 전쟁이었다. 이는 마침내 끔찍한 종교적 관습의 공식적인 금지를 이끌어 냈다.

 윌리엄 캐리는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가는 근대 기독교 선교사 운동의 선구자이다. 캐리는 비록 보통 사람이었지만 진리의 빛으로 창조주를 섬기고 인도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밝히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천재성과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였다.

 인도에서 윌리엄 캐리의 사역은 통전적으로 묘사될 수 있다. 통전적이 되려면 더 나은 전체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영역을 가져야 했다. 모든 기독교 사역이 기여하는 “전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검토하여 볼 때, 우리는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라들을 제자화하여(마24:14; 28:18-20)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임을 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일”-목표 달성을 위해 교회를 통해 하시는 주요 사역, 이다.

 만일 이것이 전체라면, 부분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4:23이 강조하는 세 영역은 설교, 가르치심, 치유이다. 각 영역은 전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초청인 복음선포를 포함한다. 이는 세계 도처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죄 용서를 받고, 영적 중생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전체적인 사역에 필수이다. 왜냐하면 잃어버리고 상한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로 영적 중생하지 않으면,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고후5:17), 희망과 치유와 변화를 가져다 줄 모든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교는 통전적 사역의 한 부분일 뿐이다.

 가르침은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사람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제자도와 관계가 있다. 마태복음28: 20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나라가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에 순종할 것”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골로새서 3:16은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네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말한다. 

 치유는 상하고 갈라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포함한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을 치유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마태복음 11:4-5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촌인 세례 요한에게 “시각장애인이 보고, 저는 자가 걸으며, 한센병 환자가 치유 받고, 청각장애인이 듣게 되고, 죽은 사람이 일어나고, 좋은 소식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된다”는 것을 알리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좋은 소식만을 전하신 것이 아니었다. 모든 형태의 상한 것을 고치심으로써 그것을 증명하셨다.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에 대한 사역이 복음전도 및 제자도와 함께 실행되지 않으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공허하고, 설득력이 없으며, 무의미 할 것이다. 육체적 가난함이 만연한 곳에서 이것은 더욱 사실로 나타난다. 사도 요한은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7-18)고 교훈하였다.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통전적 사역의 기본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설교, 가르침, 치유 같은 여러 영역이 있다. 이런 영역들은 독특한 기능을 가지나, 분리될 수는 없다.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함으로써 전체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각 영역은 성격적 세계관의 굳은 기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말로, 각 영역은 성경의 기본 전제를 통해 이해되고, 실행된다. 요약하자면, 설교와 가르침과 치유는 세 개의 통전적 사역의 필수불가결한 영역이며,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마 6:10) 이루어지는 것이다. 늘 함께 작용하는 이런 영역들이 없다면 우리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에 미치지 못하고, 인생과 나라을 변화시킬 힘이 부족할 것이다.

 통전적 사역의 목적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인류의 영적 반역에 대한 종합적인 영향이고, 둘째는 사랑과 인정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타락으로 파괴된 모든 것을 대속하시고 회복시키시려는 계획을 지금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 반역하였을 때(창3:1-6), 그들의 죄의 영향은 파괴적이고, 광범위하여 우주의 질서에까지 미쳤다. 타락으로 인해 적어도 네 가지의 관계가 파괴되었다. 첫째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가졌던 친밀한 관계이다(창3:8-9). 이는 가장 중요한 관계였고, 그들이 창조된 이유이자,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국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그들이 가진 다른 관계-개인으로서 그들이 가졌던 관계(창3:7, 10), 서로에게 동료 인간으로서의 관계(창3:7, 12, 16), 나머지 피조물과의 관계(창3:17-19)-역시 손상을 입었다. 우주는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서로 얽혀있다. 그것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것으로써, 각 개체가 다른 개체들이 알맞게 기능하는가에 영향을 받는다. 모든 부분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에 따라 제어된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가장 중요한 관계가 위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창조로 모든 영역들이 가진 원래의 조화가 영향을 받았다. 이 포괄적인 파괴의 결과는 인류 대대로 재앙을 입게 하였다. 전쟁, 증오, 폭력, 환경파괴, 불법, 부패, 우상숭배, 가난, 기근 등의 모든 것이 죄로부터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반역의 전 방위적 영향력으로부터 창조를 회복시키려 하셨을 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한 가지 파괴된 영역에 국한된 작고, 편협한 것이 될 수 없었다. 그 계획은 사람의 영혼만 구원하거나, 가르치기만 하거나, 치유기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의 상한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회복시킬 목적을 가지고 세 가지 영역 모두를 결합시킨다. 골로새서 1:19-20은 하나님의 통전적 구원 계획을 묘사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대속하고 계시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친교가 새롭게 시작된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 및 환경과 함께 본질적인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복음은 우리가 죽은 뒤에 좋은 소식일 뿐 아니라, 지금 당장에도 좋은 소식이다.

 교회의 임무는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큰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사역”에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이다(고후 5:18-20). 기독교 변증학자인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마치신 사역의 기초 위에서…… 타락으로 인한 분열이 있는 모든 영역 속에서 현재 본질적인 치유를 위해” 일하고 있어야 한다.6 이 일을 감당하려면, 우리는 먼저 이런 치유가 그리스도께서 마치신 사역의 기초 위에서, 지금 당장에도 각각의 영역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런 치유가 예수님의 재림의 측면에서는 완벽하고 온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분명하고, 본질적일 수는 있다.

 실질적으로 통전적 사역인 설교, 가르침, 타락의 결과로 상한 것이 있는 모든 영역에서의 본질적 치유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취하시고,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이신 비전이다. 그것은 인도에서 윌리엄 캐리를 위한 계획을 세우신 비전이었고, 또한 우리의 사역을 위해 계획을 세우셔야 하는 비전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첫 번째 전도여행에 파송 하셨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다”(눅 9:2).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사역이 불가분의 사역요소를 분리하는 것은 일반화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파산하거나 가난하게 된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배타적으로 설교만, 전도만, 교회설립만 중점적으로 한다. 대체로 이 두 그룹은 서로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구분을 의도하시지 않는다. 다른 것은 배제하고 하나에만 집중하면, 진실되고 오래 지속되는 변화를 가져와야 할 사역이 제한되고 무력해진다.

 테츠나오 야마모리 박사가 “기능적으로는 분리되지만, 관계적으로는 분리할 수 없다”7고 말한 것처럼, 성경은 설교와 가르침과 치유 사역의 모델을 제시한다. 각 영역은 독특하고, 특별한 주목과 집중을 받을만하다. 그러나 그 영역들은 반드시 함께 기능해야 한다. 그것들은 함께 인생과 나라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통전적 사역을 형성한다. 인도에서 윌리엄 캐리의 사역은 이 사실에 대한 역사적 증언을 제공한다.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에 따르면, 설교와 가르침과 치유는 “서로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전자는 기초가 되고 후자는 전자가 작용한 것의 증거가 되는 것”이 틀림없다.8

미주
1. Ruth and Vishal Mangalwadi, The Legacy of William Carey: A Model for the Transformation of a Culture (Wheaton, IL: Crossway Books, 1999), p. vx. Available at www.missionbooks.org
2. Quoted in ibid., p. 10
3. Ibid., p. 13
4. Ibid., p. 24.
5. Ibid., pp. 17-25.
6. Francis A. Schaeffer, Pollution and the Death of Man: The Christian View of Ecology (Wheaton, IL: Tyndale House, 1970), p. 68.
7. Tetsunao Yamamori, God’s New Envoys: A Bold Strategy for Penetrating “Closed Countries” (Portland, OR: Multnomah, 1987), p. 135.
8. David F. Wells, No Place for Truth, or, Whatever Happened to Evangelical Theolog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3), p. 103.